[‘술에 취해 적극적‘ 주장한 피의자, 최근 판례는 자기결정권 중요시, 결국 준강간으로 벌금형 선고된 사건]
1. 범죄자의 단골 변명
“여자가 적극적이었는데요…” 성폭력 수사팀에서 10년째 근무하다 보면, 이런 진술을 수없이 듣게 된다. 특히 준강간 사건에서 피의자들의 단골 변명이다. 최근 접수된 한 사건을 통해 이 문제를 다시 한번 깊이 고민하게 됐다.
2. 사건개요
한밤중에 울린 신고 전화. 모텔에서 알몸으로 깨어난 20대 여성이 신고자였다. 전날 밤 일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는 피해자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현장에 출동해보니 피해자는 전날 생일파티를 하며 과음했고, 귀가 중에 같은 아파트 주민인 피의자를 만났다고 했다.
CCTV 확인 결과, 당시 피해자는 심하게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고, 몸에서는 피까지 흐르고 있었다. 자신의 집 동·호수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취한 상태였다. 피의자는 이런 피해자를 자신의 차에 태워 모텔로 데려갔고, 성관계를 가진 뒤 아침 일찍 출근한다며 피해자만 남겨두고 떠났다.

3. 신고사건 수사
수사과정에서 피의자는 “피해자가 성관계 과정에서 매우 적극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언뜻 보면 설득력 있어 보이는 이 주장은, 수사관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실제로 일부 준강간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겉보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유효한 승낙으로 볼 수 있을까?
4. 관련 판례
최근 대법원은 준강간 사건에서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와 관련해 전체적으로 피해자가 범행 당시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실질적으로 표현·행사할 수 있었는지를 신중히 판단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즉, 피해자가 겉으로는 적극적으로 보이더라도, 그것이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결여된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유효한 승낙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5. 판례에의 적용
이번 사건의 경우를 보자. 피해자는 자신의 집 주소도 기억하지 못할 만큼 취해 있었고, 현재 위치나 상황 판단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런 상태에서 이루어진 ‘적극적’ 행동을 과연 온전한 의사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을까? 알코올로 인한 의식 장애 상태에서의 행동을 자발적 의사로 볼 수 있을까?
수사팀은 면밀한 검토 끝에 이 사건을 준강간으로 판단했다. 피해자의 외견상 ‘적극성’이 아닌, 당시의 의식 상태와 판단 능력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결과적으로 피의자는 준강간죄로 기소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6. 여자가 적극적이었다 진술, 범죄자에게 불리하게 작용
‘술에 취해 적극적이었다’는 피의자의 주장은, 오히려 피해자가 정상적인 판단능력을 상실한 상태였음을 방증하는 것일 수 있다.
수사현장에서 우리는 종종 이런 딜레마에 부딪힌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으로는 진실에 다가가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더욱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피해자의 진술과 정황증거를 꼼꼼히 검토하고, 사건 전후의 맥락을 면밀히 살펴보아야 한다.
7. 다양한 실무사례를 통한 실체적 진실발견
최근 수사실무연구회에서는 실무 사례들을 모아 함께 토론해 나가고 있다. 현직 수사관들의 경험과 법리적 검토가 어우러져, 보다 정교한 수사 기준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우리 사회가 한 걸음 더 진전되기를 희망한다. 더 이상 “술에 취해 적극적이었다”는 말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 사회, 모든 시민이 안전하게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수사관으로서 우리의 사명일 것이다.
-출처-
2024. 12. 25. 법률신문, 황운선(천안동남경찰서 성폭력범죄수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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