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말
세상에서 가장 흔한 증거 가운데 하나가 진술이다. 진술이 증거로 채택되면 판사들은 먼저 진술된 내용 자체에 초점을 맞춰서 검토한다. 진술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 과연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지, 경험적으로 볼 때 이상하지 않은지 따진다.
판사가 증거를 살필 때 기준으로 삼는 건 ‘경험칙‘, ‘논리법칙‘을 포함하여 여러 기준이 있으나 편의상 3가지로 압축해서 보기로 하자. 만일 당신이 증거1을 제출했다고 보자. 그렇다면 판사는 다음과 같이 3가지 방식으로 증거를 검토한다.
2. 증거 자체
첫째, 증거 자체이다.
세상에서 가장 흔한 증거 가운데 하나가 진술이다. 진술이란 당사자를 포함한 제3자의 말, 글을 말한다. 법정에 나와서 하는 증언이나 주장, 경찰서나 검찰에서 했던 말을 기록한 진술조서, 증거로 제출된 녹취록 등도 모두 진술에 해당한다.
진술이 증거로 채택되면 판사들은 먼저 진술한 내용 자체에 초점을 맞춰서 검토한다. 진술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 과연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지, 경험적으로 볼 때 이상하지 않은지 따진다. 앞서 언급한 논리법칙(=논리칙)과 경험칙에 부합하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를 증거의 합리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예들 들어 덩치 큰 남자가 왜소한 여성에서 얻어맞았다고 주장하는 내용이나 ‘최순실 사건에서 정동춘 이사장과 강일원 재판관의 문답이 증언 자체의 신빙성을 따지는 과정이 이에 속한다.
만일 진술 증거 자체에 논리칙이나 경험칙에 어긋나는 내용이 담겨 있다면 그 증거는 의심을 받는다. 다행히 논리칙과 경험칙에 잘 합치한다면 두 번째 검증 단계로 넘어간다.

3. 증거의 배경(출처와 시기, 동기, 경위 등)
둘째, 증거의 배경이다.
이는 이 증거가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지, 언제 제출된 것인지 등을 살피는 과정이다.(이를 증거의 객관성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만일 이 증거가 피고인과 이해관계에 놓인 사람, 예컨대 가족이나 친구, 혹은 회사 직원에게서 나왔다면 누구라도그 증거가 의심스럽지 않겠는가?
(인정상 편을 들 수 있기 때문)반대로 객관적인 입장에 놓인 제3자에게서 나왔거나 전과가 없을 뿐 아니라 해당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의 증언이라면 우리는 믿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증거의 제출 시기도 중요할 때가 있다. 예컨대 사기죄로 진행 중이던 재판이 종국을 향해 가는데 뒤늦게 ‘차용증을 찾았다’며 가져온다면
‘그토록 중요한 차용증을 어디다 보과했기에 지금 가져온 것일까?’ 혹시 가짜로 만든 것 아닌가?’하고 의심을 사게 된다. 증거의 출처와 시기, 동기, 경위 등을 따졌는대 별로 의심할 만한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면 최종 단계로 넘어간다.
4. 다른 증거와의 관계
셋째, 다른 증거와의 관계이다.
증거가 하나인 경우는 없다. 왜냐하면 검사가 제출한 공소장도 증거가 되고, 공소장에 첨부한 증거도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피고인이 제출한 의견서도 증거가 되고, 재판기일의 참석 여부나 태도, 참석 후 진술 등도 모두 증거가 된다. 물론 참석 여부만으로 유,무죄를 판결할 수는 없으나 어쨌든 판사는 재판이 시작되고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정보를 증거능력의 유무를 떠나 실제로 증거로 바라본다는 얘기다.
달리 말해 증거 자체도 증거가 되지만 증거의 배경 따위도 증거가 된다는 말이다.(증거와, 증거의 신빙성을 따지는 증거로 구분할 수 있으나 어쨌든 둘 다 의심의 차원에서 보면 증거로 묶어서 이야기해도 무방해 보인다) 그러므로 증거가 딱 한 개만 제출되는 경우는 현실적으로 없다.
판사는 본능적으로 진실의 그림을 그리려는 사람이다. 마치 고고학자처럼 하나의 뼈다귀를 통해 공룡 전체를 복원하려는 습성이 있다. 마침 정강이뼈를 손에 넣은 고고학자는 며칠 뒤 발가락뼈 하나를 발견한다. 고고학자는 이 둘 사이에 아무런 모순이 없는지 살피려고 하지 않을까?
정강이뼈가1미터인데 발가락뼈가 5미터라면 이건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새로운 증거가 입수되면 확실하다고 인정받은 사실과 비교해 보며 어긋나는 점은 없는지 따지는 건 판사의 오랜 습성 가운데 하나다. 그러므로 판사는 마지막으로 다른 증거와의 관계를 살핀다.

5. 마무리(종합)
한편 피고인이 말을 뒤집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도 판사는 위의 3가지 측면에서 주장을 살핀다. 바뀐 말 자체를 따지고, 말을 바꾼 배경을 살피고, 다른 증거와의 관계를 따져 ‘바뀐 말’과 ‘바꾸기 전의 말’가운데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지 살핀다.
그러나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말을 뒤집는 것 자체는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를 일관성이라고 부르는데 일관되게 어떤 주장을 펼치는 것, 예를 들면 ‘나는 저 여자를 성추행한 적이 없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주장하는 것이 그 자체로 보면 판사에게 신뢰가을 줄 때가 있다. 반대로 ‘나는 무죄다!’라고 일관되게 주장하다가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개전의 정’, 즉 반성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고 양형에서 불리한 판결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무죄를 주장할 지 아니면 유죄를 인정하되 양형에서 유리한 판결을 받도록 할 것인지는 재판 초기에 결정하는 것이 좋고, 말을 뒤집는 일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래서 거짓도 일관되면 진실이 될 수 있고 진실도 일관성을 잃으면 거짓으로 취급된다는 말이 생겼다.
판례나 형사소송 관련 서적 등을 보면 지금까지 설명한 내용을 ‘객관성’, ‘신빙성’, ‘합리성’, ‘일관성’, ‘논리칙’, ‘경험칙’ 등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이 피고인의 진술을 포함한 모든 증거는 이 세 가지, 즉 /증거 자체, /증거의 배경, /다른 증거와의 관계 안에서 판단되고 있다고 보면 거의 틀림 없다.
따라서 무죄 전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면 검사가 제출한 모든 증거를 이 측면에서 살펴보며 흠집을 낼 수 있는 약점이 어디인지 노려야 한다. 물론 기왕이면 범죄사실과 가까이 있는 증거에서 흠집을 잡는 게 좋다. 유죄 판결에 영향 없는 증거를 붙들고 다투어 봐야 아무 소용없기 때문이다.

-출처-
무죄의 기술, 변호사 노인수 지음, 순눈.
https://blog.naver.com/duckhee2979/221523939275
[형사재판에서는 증거능력보다 증명력이 더 중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