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문 해결
【부동산임대차계약이 유효한 동안 임차인이 임차권에 대항력을 취득 못하거나 보증금반환청구권이 실현되지 못할 위험 등에 대해서는 민법 제588조를 적용 또는 유추적용해 위험 범위 내에서 차임 지급 거절이 가능하다.
그런데 대상판결에서는 근저당권 설정만으로 차임 지급 전부를 거절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나, 근저당권이 임차인의 법적 지위에 어떤 위험을 초래했는지 구체적으로 검토 하였어야 했다】
2. 사실관계
이 평석에 필요한 한도에서 사실관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임대차계약도, 따라서 목적 부동산도, 임차인도 여럿이지만, 같은 내용의 것이어서 편의상 단수로 처리하였다. 그리고 보증금 잔금 및 임대차기간의 시기는 후에 변경합의된 것이다).
(1) 갑은 2018년 3월에 을 건설회사로부터 상가 중 한 구획의 구분건물을 3억6천여만 원에 분양받았다.
(2) 피고는 2019년 7월 갑과의 사이에 위 부동산을 임차하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 계약에서 보증금은 2천5백만 원, 차임은 월 190만 원, 임대차기간은 2020년 9월부터 2년간이었다. 그런데 보증금 중 잔금 1천7백만여 원은 끝내 지급되지 않았다.
(3) 갑은 2020년 9월 2일 원고에게 위 부동산의 수분양권을 양도하였다. 을 회사는 동월 14일 원고에게 위 부동산에 관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경료하였다.
(4) 원고는 위 이전등기가 이루어진 같은 날 병 은행에게 채권최고액이 2억2천여만 원의 근저당권설정등기를 하여 주었다.

3. 사건 경과
(1) 이 사건에서 원고는, 자신이 위 임대차계약상의 임대인 지위를 승계하였다고 주장하고 위 임대차기간 동안에 관한 차임의 지급을 청구하였다.
(2) 원심은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였다.
그 이유는 우선 “임차인의 목적물에 대한 사용·수익은 목적물 인도를 당연한 전제로 하므로 임대인의 귀책사유를 불문하고 목적물 인도의무가 이행되지 않은 기간 동안 임차인은 차임 지급의무를 면한다”고 전제한 다음, 원고가 이 사건 부동산을 피고에게 인도한 바 없으므로 피고는 차임지급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한편 원고는 “2020년 9월 14일 공인중개사를 통해서 임차인이 보증금 잔금을 치르면 입주지원센터에서 열쇠를 받을 수 있다고 통지하여 인도의무를 다하였다”는 취지로 주장한 바 있다. 이에 대하여 원심은, 인도의무의 이행제공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사정만으로는 임대인이 목적물을 인도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위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4. 대법원 판단
대상판결은 다음과 같이 판단하여 원고의 상고를 기각하였다.
1) 우선 임대인의 인도의무와 임차인의 차임지급의무의 관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판시한다.
(1) “임대인은 임차인에게 목적물을 인도하여 이를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할 의무를 부담하고, 임차인은 이에 대하여 차임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한다(민법 제618조, 제623조 참조). 이러한 각 의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대차계약이 유효하게 성립하면 발생하는 것이고,
상대방의 의무 이행이나 이행의 제공이 있어야 비로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임차인의 차임지급의무는 그가 임대인으로부터 목적물을 인도받았는지와 무관하게 임대차계약의 효력으로서 발생한다. 다만 임대인의 위와 같은 의무는 임차인의 차임 지급의무와 서로 대응하는 관계에 있으므로,
임대인이 이러한 의무를 불이행하여 목적물의 사용·수익에 지장이 있으면 임차인은 지장이 있는 한도에서 차임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대법원 2019. 11. 14. 선고 2016다227694 판결 참조).”
(2) 이어서 임차인의 차임지급의무와 관련하여서 다음과 같이 판시하여 적어도 추상적인 법리의 차원에서 원심과 다른 태도를 취한다. 즉 “임대인이 목적물을 현실적으로 인도하지 아니하였더라도 자신의 의무를 이행제공하고 그 상태가 계속된다면” 임차인은 역시 차임의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는 임대인 측에서 그 의무를 이행제공하였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2)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대법원의 판단은 이어지는 다음과 같은 판시이다(그러나 이 부분 판시는 「판례공보」 편집자의 주의를 끌지 못하여 그 「판결요지」에 전혀 담겨 있지 않다).
“임대인의 위와 같은 의무에는 임대차계약 당시 임대차목적물에 대한 권리관계 및 임대차계약의 내용에 비추어 임차인이 확보할 수 있는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취득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의무도 포함된다고 보아야 한다. 상가건물에 대한 임대차에서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목적물 인도와 사업자등록 및 확정일자를 받을 것이 요구되는데(「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제3조, 제5조 참조),
이 사건 임대차계약에는 이 사건 부동산 인도 전에 이를 제3자에게 담보로 제공한다는 특약이 있다는 등의 사정이 없음에도 원고들은 이 사건 부동산을 인도하기 전인 2020년 9월 14일 병 회사에 채권최고액이 2억2천여만 원인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마쳐주어 피고는 위 회사에 대하여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면 원고들은 임대인으로서의 의무를 이행하거나 이행제공을 하였다고 볼 수 없고, 이에 따라 피고는 이 사건 각 부동산을 사용·수익할 수 없었으므로 차임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 따라서 원심이 원고들의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결론은 정당하다.”

5. 평석
(1) 대상판결은, 상가건물의 임대차에서 임대인은 목적물을 실제로 임차인에게 인도하거나 그 인도의무의 이행제공을 하지 아니한 경우는 물론이고 그가 계약 체결 후 제3자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하여 준 경우에도 임차인은 차임의 지급을 전부 거절할 수 있다고 판시한다.
즉 대상판결은 임대차계약 후 목적물에 근저당권이 설정되었다는 사실 자체로써 임차인이 이제 자신의 임차권에 관하여 “대항력 및 우선변제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일반적으로 설시하고, 그리하여 “이에 따라 피고는 이 사건 부동산을 사용·수익할 수 없었으므로 차임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는 태도를 정면에서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일반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으로서, 거기에는 그 지급 거절에 어떠한 제약 내지 전제조건이 붙어 있다거나 그 거절의 범위가 일정한 다른 사정에 걸려 있다는 등의 판시는 전혀 붙어 있지 않다. 위와 같은 태도에 의하면, 혹은 이미 담보가 설정되어 있는 부동산에 대하여 임대차계약이 체결되더라도 임대인이 임차인에 대하여 차임 지급을 청구할 수 없게 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고, 그리하여 실제의 거래계에서 임대차계약 자체가 행하여지지 않는 결과가 될 것이다.
대상판결과 같은 태도는 우리의 부동산 거래 일반에 대하여 적지 않은 의미를 가지고 또 큰 임팩트를 줄 것으로 여겨진다. 나는 그에 쉽사리 찬성할 수 없다. 물론 임대인인 원고는 피고에게 목적물 인도의무를 이행하지 아니하였고 또 그 이행제공을 하지 못했다. 그것만을 이유로 하였다면 대상판결의 결론은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2) “소유자는 법률의 범위 내에서 그 소유물을 사용, 수익, 처분할 권리가 있다.”(민법 제211조. 이하 민법 규정은 법명을 달지 않는다) 그리하여 소유자가 체결한 임대차계약으로써 목적물의 사용수익에 관한 법적 권능이 임차인에게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임대인은 ―임차인과의 채권적 관계에서도― 소유권의 나머지 권능, 예를 들면 이 사건에서 문제된 바의 목적물을 담보에 제공하는 등 처분에 관한 권능을 여전히 가진다. 그리고 부동산소유자에게 이와 같이 사용수익 허용과 담보 제공(이하에서는 그 중에서 특히 근저당권을 포함하여 저당권의 설정에 한정하여 논의한다) 양자를 모두 법적으로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소유권이라는 현저한 재화의 가치를 제대로 살리는 길임은 물론이다.
그리하여 원칙적으로 임차인은 목적물을 제대로 사용수익하는 한 저당권의 설정을 들어 그 사용수익의 대가인 차임의 지급을 거절할 수 없다.
(3) 그런데 저당권을 취득한 사람이 나중에 피담보채권의 만족을 얻지 못하여 그 권리를 행사하게 되면, 임차인으로서는 경우에 따라서 자신의 사용수익 자체 또는 보증금(이하 ‘전세금’을 포함한다)반환청구권의 만족을 계약 내용대로 온전히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당권의 설정 자체는 어디까지나 ‘장래의 위험’일 뿐이고 아직 그 위험이 현실화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임대인으로서는 무엇보다도 저당권의 피담보채권을 제대로 이행하는 등으로 그 위험이 현실화되지 아니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선 애초에 거래관념상 그 위험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없도록 저당권을 설정하는 것은 당연히 허용되는 바이다.
이 측면과 관련하여서 살펴보면, 우리의 부동산거래에서 소유자는 일반적으로 보증금액과 저당권의 피담보채권액(통상적으로는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의 합계를 목적물의 시가보다 낮은 것으로서 상당한 금액이 되도록 함으로써 이에 대처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의 거래는 임대인뿐만 아니라 임차인 또는/및 저당권자에게도 충분히 합리적인 것으로서,
대상판결이 말하는 것과 같은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특약’이 없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무슨 의무 위반이 있다고 하기 어렵다(그 합계가 목적물의 시가보다 많은 경우라도 그것 자체로 의무 위반이라고는 할 수 없고, 소유자의 재산관계, 채무의 이행기, 이자·이율 등 각 거래를 둘러싼 제반 사정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 사건에서도 목적물의 애초 분양가가 3억6천여만 원으로 이 사건 임대차 및 근저당권 설정 당시의 시가가 그보다 상당히 하락하였을 가능성은 없다고 여겨진다. 그런데 임대차보증금은 2천5백만 원이고, 근저당권의 채권최고액은 2억2천여만 원으로서 이를 합하여도 2억5천만 원 정도로서, 위 분양가의 70% 정도인 것이다. 그럼에도 대상판결은 채권최고액 2억2천여만 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하였다는 것만을 가지고 임대차관계의 원만한 전개의 핵심적인 부분을 이루는 임차인의 차임 지급을 전적으로 폐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본 첫 번째 위험은 저당권의 피담보채권관계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가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임차인에게 실제로 ‘위태로운’ 것으로 되어 가는 경우에 비로소 그에게 어떠한 구제수단이 인정될 여지가 있을 것이다.
(4) 부동산임대차계약이 효력을 가지고 있는 동안 임차인이 임차권에 대항력을 취득하지 못하여 목적물의 새로운 소유자 기타 제3자에게 사용수익권능을 포함하여 자신의 권리를 대항하지 못할 위험 또는 임대차의 종료 후 발생하는 보증금반환청구권이 실현되지 못할 위험 등에 대하여는 무엇보다도 제588조가 적용 내지 유추적용된다고 할 것이다.
동조는 “매매의 목적물에 대하여 권리를 주장하는 자가 있는 경우에 매수인이 매수한 권리의 전부나 일부를 잃을 염려가 있는 때에는 매수인은 그 위험의 한도에서 대금의 전부나 일부의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 그러나 매도인이 상당한 담보를 제공한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정한다
(형법에서와는 달리, 민법의 앞 3편 규정에서 ‘위험’이라는 용어는 이른바 대가위험에 관한 것으로서 맥락을 달리하는 제537조의 표제를 제외하고는 유일한 것이다. ‘염려’는 위 제588조에서도 보는 대로 여기저기 채택되어 있는 용어이다. 그 외에 이른바 ‘불안의 항변권’에 관한 제536조 제2항의 “상대방의 이행이 곤란할 현저한 사유”도 참조).
이는 물론 매매에 관한 규정이나, 매매에 관한 규정은 그 이외의 유상계약에도 그 성질에 반하지 아니하는 한 준용된다(제567조).
여기서 임차인의 차임 지급 거절은 ‘그 위험의 한도에서’ 정당화된다. 또 대상판결이 인용하는 대판 2019. 11. 14, 2016다227694(공보 2020년, 4면)도 “임대인이 이러한 의무를 불이행하여 목적물의 사용·수익에 지장이 있으면 임차인은 그 지장이 있는 한도에서 차임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판시한다.
여기서 ‘이러한 의무’라고 함은 그 판결에서는 “목적물을 사용·수익에 필요한 상태로 유지하게 할 의무”, 즉 제623조의 의무(당해 사건에서 구체적으로는 임대인이 임차인 지출의 필요비를 상환하여야 할 의무)를 가리킨다(그리하여 임차인이 지출한 필요비 금액의 한도에서 차임 지급을 거절할 수 있다고 한다).
6. 결론
이 사건에서도 과연 문제의 근저당권 설정이 임차인의 법적 지위에 어떠한 ‘위험’을 발생시켰는지를 구체적으로 따져보았어야 했다. 대상판결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그냥 근저당권의 설정 자체로써 이미 차임 지급을 전부 거절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만일 그러한 취지가 아니라면 그 점을 분명히 밝혔어야 했다.

-출처-
2024. 11. 30. 법률신문 판례평석, 양창수 전 대법관·서울대 로스쿨 명예교수
https://blog.naver.com/duckhee2979/222790753812[임차인이 신규임차인을 임대인에게 주선시도해야 권리금보호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