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인지 감수성 대표적 판례
실무상 피해자 신술이 거의 유일한 증거인 경우에 그 신빙성을 어느 정도 인정할 것인지가 쟁점이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사건의 심리를 할 때에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중략)~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행 등의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편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시(대법원 2018. 10. 25. 선고 2018도7709 판결, 강간 등)하여 피해자 신술의 신빙성을 높게 평가하였다.
이른바 ‘피해자다움‘의 관점에서 벗어나 ‘성인지 감수성‘의 관점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2. 결이 다른 판례[=성인지적 관점의 변화]
(1) 성인지 감수성의 재고
그후 2024. 1. 이와 결을 달리하는 듯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었다.[대법원 2024. 1. 4. 선고 2023도13081판결, 성폭력처벌법위반(공중밀집장소에서의추행)] 즉, “성범죄 사건을 심리할 때에는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해야 하므로,
개별적·구체적 사건에서 성범죄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지만, 이는 성범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제한 없이 인정하여야 한다거나 그에 따라 해당 공소사실을 무조건 유죄로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라고 판시하였다.
또한 이 판결은 형사소송법이 형사사건의 실체에 대한 유무죄의 심증 형성은 법정에서의 심리에 의하여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의 한 요소로서 실질적 직접심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2024. 1.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관련하여 많은 논의가 있다.[한겨례, “‘성범죄 가해자’ 변호사가 웃는다-대법원은 정말 변심했나[뉴스AS]<2024. 2. 13.>/ 채널A’법조 시그널’ 성범죄 피해자 진술만으로 유죄? 대법원의 두 판결”<2024. 2. 22.>]
하급심 실무도 이 대법원 판결을 원용하고 있는 듯하다.(중앙일보, “‘단독’ 두 달새 25건 ‘무죄’ – 성범죄 판결이 달리진다[천대엽 판결 후폭풍]<2024. 3. 6.>)
(2) 대법원 판결 구체적 근거
① 성범죄 피해자 진술에 대하여 성인지적 관점을 유지하여 보더라도, 진술 내용 자체의 합리성·타당성 뿐만 아니라 객관적 정황, 다른 경험칙 등에 비추어 증명력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② 또한 피고인은 물론 피해자도 하나의 객관적 사실 중 서로 다른 측면에서 자신이 경험한 부분에 한정하여 진술하게 되고, 여기에는 자신의 주관적 평가나 의견까지 어느 정도 포함될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의 객관적 사실에 대하여 피고인과 피해자 모두 자신이 직접 경험한 사실만을 진술하더라도 그 내용이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항시 존재한다.
즉, 피고인이 일관되게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공소사실을 인정할 직접적 증거가 없거나, 피고인이 공소사실의 객관적 행위를 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고의와 같은 주관적 구성요건말을 부인하는 경우 등과 같이 사실상 피해자의 진술만이 유일한 증거가 되는 경우에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더라도 피고인의 주장은 물론 피고인이 제출한 증거, 피해자 진술 내용의 합리성·타당성, 개관적 정황과 다양한 경험칙 등에 비추어
피해자의 진술만으로 피고인의 주장을 배척하기에 충분할 정도에 이르지 않아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진실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3) 대법원 판결 이유
형사소송법은 형사사건의 실체에 대한 유무죄의 심증 형성은 법정에서의 심리에 의하여야 한다는 공판중심주의의 한 요소로서, 법관의 면전에서 직접 조사한 증거만을 재판의 기초로 삼을 수 있고 증명 대상이 되는 사실과 가장 가까운 원본 증거를 재판의 기초로 삼아야 하며 원본 증거의 대체물 사용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실질적 직접심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법관이 법정에서 직접 원본 증거를 조사하는 방법을 통하여 사건에 대한 신선하고 정확한 심증을 형성할 수 있고, 피고인에게 원본 증거에 대한 직접적인 의견진술의 기회를 부여함으로써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고 공정한 재판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수사기관이 작성한 진술조서는 수사기관이 피조사자에 대하여 상당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문답 과정을 그대로 옮긴 ‘녹취록’과는 달리 수사기관의 관점에서 조사결과를 요약·정리하여 기재한 것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진술의 신빙성 유무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진술 경위는 물론 피조사자의 진술 당시 모습·표정·태도, 진술의 뉘앙스, 지적능력·판단능력 등과 같은 피조사자의 상태 등을 정확히 반영할 수 없는 본질적 한계가 있다.
따라서 피고인이 수사과정에서 공소사실을 부인하였고 그 내용이 기재된 피의자신문조서 등에 관하여 증거동의를 한 경우에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증거능력 자체가 부인되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 내용이나 진술의 맥락·취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그 중 일부만을 발췌하여 유죄의 증거로 사용하는 것은 함부로 허용할 수 없다.
특히 지적능력·판단능력 등과 같이 본질적으로 수사기관이 작성한 진술조서에 나타나기 어려운 피고인의 상태에 대해서는 공판중심주의 및 실질적 직접심리주의 원칙에 따라 검사가 제출한 객관적인 증거에 대하여 적법한 증거조사를 거친 후 이를 인정하여야 할 것이지, 공소사실을 부인하는 취지의 피고인의 진술이 기재된 피의자신문조서 중 일부를 근거로 이를 인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3. 결론
생각컨대, 형사사법절차의 핵심은 실체적 진실발견과 인권보장에 있다. 피해자나 혐의자 그 누구에게도 억울함이 없도록 실체진실을 밝혀야 하고 동시에 혐의자에 대한 무죄추정과 적법절차의 원칙도 보장되도록 조화로운 실무 운용이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성범죄 수사·재판 관련 종사자들은 성인지 감수성은 물론 인권 감수성도 잃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증거판단이나 사실인정 과정에서 어떤 한쪽에 유리한 법 논리나 관행적인 선입견·편견에 치우쳐서는 아니 된다. 잘 몰라서 하는 주장이라고, 뻔한 주장이라고 경시하지 말고 그 간절한 목소리를 경청하고 좀 더 세밀하고 공정한 입장에서 살펴야 한다. 여기서부터 형사사법의 신뢰가 시작된다.

-출처-
성범죄성희롱스토킹, 이정수변호사 외 1인, 법률신문사.
https://blog.naver.com/duckhee2979/222609518989[성인지 감수성 판례]
https://blog.naver.com/duckhee2979/223800886159[피해자 진술 함부로 배척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