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준강간 피해자가 블랙아웃이어도 항거불능일 수 있다 ★

1. 블랙아웃에 대한 오해

검사가 준강간(준강제추행 포함) 사건의 피의자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주장은 “피해자가 술은 마셨지만 성관계에 합의하였다”는 것이다. ‘술에서 깨어 보니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피해자와 ‘피해자가 블랙아웃으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성관계 당시에는 멀쩡하게 동의했다’고 주장하는 피의자 사이에서 검사는 고민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흔히 ‘필름이 끊겼다’는 말로 블랙아웃을 경험한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간 피해를 주장하며 고소하는 경우도 있다. 성범죄에서 가장 중요한 증거는 피해자의 진술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블랙아웃의 경우 피해 순간을 설명할 수 있는 피해자의 진술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준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입증하는 것은 가능한 것일까.

2. 블랙아웃은 무죄라는 잘못된 인식

과거의 사례들을 보면, 피해자가 술에 취했다고 하는 시간에 피의자와 함께 걸어가거나 대화하는 모습이 단편적으로라도 CCTV에서 포착되는 경우에 무죄가 선고된 예도 없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준강간 피의자들은 ‘피해자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블랙아웃이었다는 것이 인정되면 무죄가 선고된다’는 공식이라도 있는 것처럼 섣불리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오해는 의학적 개념인 블랙아웃과 규범적 개념인 성적자기결정권을 혼동한 결과이다. ‘블랙아웃이었다’는 사실이 곧바로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는 사실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항거불능

3. 블랙아웃이어도 항거불능

의학적으로 ‘알코올 블랙아웃’은 단기간 폭음으로 혈중 알코올 농도가 중증도 이상으로 급격히 올라가 기억 형성에 관여하는 뇌의 특정 기능인 인코딩 과정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일정 시점에 진행되었던 사실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알코올의 심각한 독성화와 전형적으로 결부된 형태로서의 의식상실의 상태, 즉 알코올의 최면 진정 작용으로 인하여 수면에 빠지는 의식상실을 의미하는 패싱아웃(passing out)과는 구별된다.

2020년 법원행정처에 보고된 「형사재판에서 블랙아웃 현상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알코올의 양이 늘어가고 섭취 속도가 빨라짐에 따라 그 독성이 의식이나 인지기능에 미치는 영향력도 점차 증가하기 때문에 블랙아웃의 경우에도 기억상실을 넘어서 의식장애나 인지기능 장애가 수반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알코올 블랙아웃이 다른 의식의 장애 없이 오직 기억상실의 증상만을 보인다는 것은 그러한 특징적 상태의 단면만을 포착한 것일 뿐 인지기능 장애로 연결되거나, 의식상실(passing out)까지는 아니더라도 의식장애의 상태가 야기될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는 것이다.

4. 블랙아웃이더라도 항거불능 관련 판례

즉, ‘블랙아웃’이라는 상황만으로는 피해자의 온전한 의식상태에 기반한 장애 없는 성적자기결정권의 행사 가능성을 전적으로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알코올의 영향으로 성적인 침해행위에 맞서려는 저항력이 현저하게 저하된 ‘항거불능’의 상태였는지에 대한 물음은 여전히 남아 있게 된다.

그러한 의미에서, ‘블랙아웃이 발생하여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바로 피해자가 동의를 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판시한 대법원의 판례(2018도9781)는 주목할 만하다.

항거불능

5. 대법원 판결의 시사점

[블랙아웃과 관련한 대법원 판결의 시사점]

2018도9781 판결은, 28세의 피고인이 술에 취한 18세의 피해자를 빌딩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마주치고 함께 돌아다니다가 모텔로 데려가 추행한 사건에 관한 것이다. 블랙아웃 사건의 리딩케이스로 불릴 만한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CCTV로 확인되는 피해자의 외관상 (비교적) 정상적인 모습 등에 근거하여 피해자의 블랙아웃 가능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던 원심을 유죄 취지로 파기했다.

[판결이 갖는 의미는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1) 의학적 상태 블랙아웃과 규범적 의미 성적자기결정권 행사가능 상태 구별

첫째, 의학적 상태로서의 ‘블랙아웃’과 규범적 의미로서의 ‘정상적으로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태’를 명확히 구별하였다는 점이다.

해당 판결은 피해자의 신체 및 의식 상태를 인지기능이나 의식상태의 장애에는 이르지 않은, 기억형성의 실패만을 야기한 블랙아웃 상태 술에 취하여 수면상태에 빠져 의식을 상실한 패싱아웃 상태 알코올의 영향으로 행위통제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의 세 가지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고 보았다.

피해자의 신체 및 의식 상태가 ①에 해당한다면 피해자가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나, ② 또는 ③에 해당한다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판결은 피해자의 신체 및 의식 상태가 위 세 가지 경우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 사정들과 더불어 전후 여러 사정을 종합하여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2) 피해자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쉽게 블랙아웃 인정해선 안돼

둘째, 피해자의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쉽사리 ‘알코올이 기억형성의 실패만을 야기한 블랙아웃’일 가능성을 인정하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결국 피해자가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는지를 판단하려면, 피해자의 음주량, 음주 속도, 음주 후 경과시간, 주량, 기억장애 경험의 유무, CCTV나 목격자에 의해 확인되는 피해자의 상태, 언동, 피고인과의 평소 관계, 만나게 된 경위, 성적 접촉이 이루어진 장소와 방식, 그 계기와 정황, 피해자의 나이·경험 등 특성, 성에 대한 인식 정도, 심리적·정서적 상태, 사건 이후 피해자의 반응 등 전후의 객관적인 사정들을 폭넓게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위 사건에서 대법원은 피해자가 어느 순간 스스로 걸을 수 있었다거나 자신의 이름을 대답하는 등의 행동이 가능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심신상실 상태에 있지 않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오히려, 피해자가 짧은 시간 동안 다량의 술을 마셔 구토를 할 정도였고, 잃어버린 소지품을 찾지 못한 채 그날 처음 만난 피고인과 모텔에 들어가서 무방비로 잠들었으며, 인터폰으로 자신의 이름을 말해준 이후에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다시 잠이 들어버렸을 뿐 아니라 경찰이 모텔 객실에 들어오는 상황이었음에도 옷을 벗은 상태로 누워 있었던 점에 주목하였다.

나아가 피해자와 피고인의 관계, 연령 차이, 피해자가 피고인을 만나기 전까지의 상황, 함께 모텔에 가게 된 경위 등을 더하여 볼 때 피해자가 심신상실 등이 의심될 정도로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정상적인 상태라면 피고인과 성적 관계를 맺거나 이에 수동적으로나마 동의하리라고 도저히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6. 퍼즐맞추는 검사 시선

준강간 피해자에 대하여 블랙아웃 주장이 제기되는 사건은 피해자의 기억의 한계 때문에 피해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에 관한 진술 증거가 없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비어 있다고 해서 전체 퍼즐의 모양을 가늠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위 판결 이후 준강간 사건에서 ‘피해자가 범행 당시 멀쩡하게 동의했고 그 이후에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라는 주장이 제기되는 경우, 범죄를 구성하는 나머지 퍼즐 조각을 모아 맞추는 일이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피해자의 기억상실로 성관계 순간에 대한 퍼즐을 잃어버렸다고 하더라도 제반 사정과 관련한 많은 정황증거는 그대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퍼즐을 맞추다 보면 ‘피해자가 심신상실 등이 의심될 정도로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었는지’ 피해자가 정상적인 상태 하에서라면 피의자와 성적 관계를 맺거나 이에 수동적으로나마 동의하리라고 도저히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인정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나머지 퍼즐 조각을 찾는 것은 수사기관의 몫으로 남겨져 있다.

-출처-

2026. 4. 11. 정수정 부장검사(서울북부지검)

준강간피해자

7. 평가와 시사점

(1) 평가

위 글은 준강간 사건에서 피고인들이 전해오는 가장 강력한 방어 논리인 ‘블랙아웃’의 허상을 법리적으로 정밀하게 해부했다는 점에서 매우 탁월한 통찰을 보여준다. 법률 전문가의 시각에서 이 글을 평가하자면, 단순히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의학적 현상인 블랙아웃을 ‘성관계에 대한 유효한 동의’로 치부해왔던 과거의 안일한 실무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성적자기결정권이라는 규범적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이 돋보인다.

특히 의학적 상태인 블랙아웃과 규범적 개념인 항거불능 상태를 명확히 구분한 대법원 판례(2018도9781)를 중심으로 논지를 전개한 점은 매우 설득력이 크게 보인다. 블랙아웃은 뇌의 인코딩 과정 오류일 뿐이며, 비록 피해자가 겉으로 보기에 걷거나 대화하는 등 ‘정상적인’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이 곧 온전한 판단력에 기초한 성적 결정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논리는 현대 형사법이 지향하는 ‘실질적 동의’의 개념과 일맥상통하다.

단순히 필름이 끊긴 것을 넘어, 알코올 독성으로 인해 이성적 통제력이 마비된 상태였다면 설령 신체적 움직임이 가능했더라도 이를 ‘항거불능’으로 보아야 한다는 판단은 피해자 보호의 사각지대를 메우는 중요한 법리적 진보라고 평가할 수 있다.

(2) 시사점

이 글이 주는 가장 큰 시사점은 수사기관과 법원이 ‘사건의 퍼즐’을 맞추는 방식의 대전환이다. 피해자의 기억이 소멸하여 직접적인 진술 증거가 없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음주량과 속도, 평소 주량, 사건 전후의 객관적인 정황, 피고인과의 관계 등 수많은 ‘주변 조각’들을 통해 진실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피고인들에게 “피해자가 기억 못 하니 무죄”라는 식의 막연한 기대가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예고하는 동시에, 수사기관에는 더욱 치밀하고 입체적인 정황증거 수집을 요구하는 전문적인 지침이 될 것이다.

결국 블랙아웃 사건의 핵심은 ‘기억의 유무’가 아니라 ‘동의의 진실성’에 있다. 이 글은 피해자가 무방비 상태로 잠들거나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는 등의 비정상적인 상태였다면,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동의를 추정해서는 안 된다는 엄격한 기준을 재확인해 주었다. 법은 술 뒤에 숨은 가해자의 비겁한 변명보다, 술에 취해 자신의 권리를 방어할 수 없었던 피해자의 침해된 자유에 더 주목해야 한다는 준엄한 원칙을 다시금 일깨워준 사례라 할 수 있다.

성범죄 수사 실무에서 이처럼 ‘비어 있는 기억의 퍼즐’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채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이번 칼럼에서 제시된 기준들은 수사관과 법관들에게 매우 명확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인공지능이 사실관계를 정리할 때도 이러한 다각적인 정황 분석 논리를 적용한다면, 더욱 정교하고 타당한 법률적 시나리오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항거불능준강간

[With Gemini]

https://blog.naver.com/duckhee2979/223676780223[블랙아웃 법리]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