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말
① 솔로몬의 판결, ②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서 포샤의 판결, ③《춘향전》에서 암행어사 이몽룡의 처분은 당시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서 보면, 모두 놀랄만한 지혜와 반전으로 감동(“지혜/정의/창의적“등)이나 카타르시스를 준다. 그런데, 이런 판결, 처분을 다른 각도에서 혹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평가 내지 재해석해 보기로 하자.
2. 솔로몬 판결
어느 날 이스라엘 왕 솔로몬 앞에 온 두 여인이 한 아기를 안고 와서 서로 갓난아이의 생모라고 주장하였다. 한 여자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억울합니다. 저는 여행 중에 어젯밤 아기를 데리고 이 여자의 집에서 자게 되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 집 아기가 죽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부터 이 여자가 제 아기를 자기 아기라고 우기지 뭡니까.” 듣고 있던 다른 여자가 소리쳤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죽은 아기는 저 여자 아기예요.”
두 여자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솔로몬은 “칼로 아이를 베 반쪽씩 나누어 가지라”고 명령했다. 한 여자는 울부짖으며 “차라리 아기를 저 여자에게 주고, 제발 죽이지 말라”고 호소하였고, 다른 엄마는 “아기의 반쪽이라도 가져가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솔로몬은 아기가 죽을까 봐 울부짖는 여인을 가리키며 “이 여인이 아기의 진짜 어미다”라고 말하며 아기를 안겨주었다. 바로 솔로몬의 명판결이다.
그런데, 만약 두 여자 모두 아이를 칼로 나누는 걸 거부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만약 두 여자 모두 아이를 나누는 걸 찬성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느 쪽이든 진짜 엄마를 가리기는 곤란했을 것이다.
3. 포샤 재판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로부터 벨몬트에 사는 포샤에게 구혼하기 위한 여비로 3000두카트를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안토니오는 해상무역을 위해 보내둔 자신의 상선들이 싣고 올 자산을 담보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서 돈을 빌린다.
샤일록은 안토니오로부터 이자를 받지 않는 대신, 돈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심장에서 가까운 살 1파운드를 달라고 요구하였고 안토니오는 이에 동의하는 증서를 써주었다. 그런데 안토니오의 상선들이 모두 침몰하면서 기일 내에 빌린 돈을 갚지 못하게 되었고, 샤일록은 약속대로 살 1파운드를 원해 안토니오는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이리하여 재판이 벌어지는데, 재판관으로 변장한 포샤는 샤일록에게 “자비를 베풀어 돈으로 빚을 받아 가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고, 바사니오도 “안토니오가 빌린 돈의 3배를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샤일록은 이를 거절하며 계약대로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재판관은 샤일록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계약서에 오직 ‘살’만 적혀 있을 뿐 ‘피’는 적혀 있지 않으니, 살을 가져가되 피를 내서는 안 되며,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샤일록은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사형에 처해진다”고 선언했다.
이제 샤일록은 안토니오를 죽이는 것을 포기하고 대여금을 돈으로 받아 가겠다며 물러섰지만, 재판관은 이미 판결은 내려졌다며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샤일록은 재판관의 명령에 따라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재산의 절반을 안토니오에게 피해보상으로 넘겨준다’는 조건으로 사건을 마무리 짓는다.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고리대금업 등에 종사하는 유대인에 대하여 얼마나 편견을 갖고 있었고 미워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위 재판은 포샤의 기지로 샤일록의 잔인한 처사에 철퇴를 가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오늘날의 법에 의하면 여러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다.
먼저, 포샤는 재판관이 아니라 재판관으로 위장한 것이어서 ‘법관에 의한 재판’이 아니므로 이 판결은 ‘당연무효’다. 만약 포샤가 재판권이 있는 시장의 위임을 받았으므로 재판관 자격이 있었다고 가정하더라도 안토니오의 친구인 바사니오의 약혼자로서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으므로 ‘제척’ 사유가 되고, 재판관 스스로 ‘회피’해야 하며, 샤일록으로서도 ‘기피’ 신청을 할 수가 있다(민사소송법 제41조, 형사소송법 제17조 등).
다음으로, ‘살 1파운드 제공 약속’은 현대판 ‘신체 포기 각서’로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민법 제103조)에 해당하여 위 계약은 원천적으로 무효이다. 만약, 샤일록이 재판 전에 강제로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떼어내다가 그를 죽였다면 살인죄에 해당하고, 안토니오의 동의를 받고 죽였다면 ‘승낙에 의한 살인죄’에 해당한다(형법 제250조, 제252조).
– [포샤 판결] 시사점–
4. 암행어사 이몽룡의 처분
억울하게 고통받던 춘향이나 그의 정인 이몽룡의 입장에 몰입한 독자나 관객으로서는 위와 같은 이몽룡의 행위가 극적이고 통쾌하지만, 암행어사로서의 처신에 대하여는 여러 의문을 던질 수 있다.
먼저, 이몽룡은 임금의 특명으로 전라도 암행어사의 소임을 맡았으면, 전라도 각지의 고을을 차례로 들러 민심을 살피고 지방관의 비리와 부정이 있는지 꼼꼼히 조사했어야 하는데도, 곧장 춘향이 있는 남원으로 내려갔으니 이는 임금의 명령에서 벗어난 부적절한 처신이며 탄핵이나 처벌 사유가 될 수 있다. 더군다나 어사인 이몽룡은 자신의 정인이 고을 사또로부터 고초를 겪고 있다면, 자신이 직접 처리할 게 아니라, 마땅히 임금에게 보고하고 다른 어사가 처리할 수 있도록 ‘회피’를 했어야 했다.
또한, 암행어사에게 관아의 창고 문을 닫고 수령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권한은 있지만 수령을 체포하거나 파직할 권한은 없으며, 이는 어사의 보고를 받은 임금이 처분할 일이다. 따라서 이몽룡이 변사또를 체포하거나 파면했다면 이는 월권이거나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5. 법은 상대적인 존재
솔로몬, /포샤, /이몽룡 3사람은 서로 다른 상황에서 각자 지혜롭고 창의적이거나 정의로운 판단을 하여 해결방법을 내놓았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위와 같이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진리가 상대적이듯이, 그들이 적용한 법 역시 시대, 나라에 따라 달라지고 또 상황에 따라 달리 해석되는 상대적인 개념인 것이다.
-출처-
2024. 1. 18. 법률신문, 임관혁 검사장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