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범죄와 의뢰인·변호인의 비밀유지권(ACP) 관계 ★

1. 변호사에게는 말 못 할 이유가 없다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는 여성을 폭행하고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는 부유한 청년 클라이언트가 등장한다. 그동안 결백함을 호소했던 클라이언트는 변호사에게 속삭인다. “사실은 내가 했어. 당신은 내 변호사니까 말 못 할 이유가 없지. ACP니까.” 영화 속에서 의뢰인의 자백을 들은 변호사는 그 내용에 관하여 침묵할 수밖에 없다. 법률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다시 생각해 보게 되는 장면이다.

ACP(Attorney-Client Privilege)’, 즉 ‘의뢰인과 변호인의 비밀유지권’은 의뢰인과 변호인 사이에 법률자문을 위해 비밀리에 이루어진 의사 교환 내용에 대하여 의뢰인의 동의 없이 공개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2. 영미법 국가에서 기원과 우리 입장

영미권 국가에서는 오래전부터 의뢰인과 변호인의 비밀유지권이 보장되어 왔다. 우리의 경우 헌법에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기본권으로 명시하고 있음에도, 하위 법령에 비밀유지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명문 규정이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의뢰인과 변호인 사이에 교환된 자료는 형사사법 절차에서 실체적 진실발견을 위한 강제수사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압수수색

3. 헌법재판소의 결정과 개정 변호사법 ACP 명문화

그러나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충분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의뢰인과 변호인 사이의 신뢰를 전제로, 피의자·피고인과 변호인 또는 변호인이 되려는 사람 사이의 조언과 상담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그 내용에 대하여도 비밀이 보장되어야 한다(헌법재판소 2004. 9. 23. 선고 2000헌마138 등).

이러한 인식이 학계와 법조계에서 점차 확대되면서 2026년 2월 19일에 이르러 개정 변호사법에 의뢰인과 변호인 사이의 비밀유지권이 명문화되었다. 이제는 개정 변호사법 제26조의2에 따라 변호사와 의뢰인은 ‘법률 조력을 제공하거나 받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의사교환 내용’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법 개정은 의뢰인과 변호인 사이에 신뢰를 바탕으로 나눈 비밀 정보를 실질적으로 보호함으로써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의뢰인의 헌법상 기본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4. 비밀보장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실질적 변호인 조력권 보장

비밀보장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피의자·피고인이 해당 사건에 관하여 변호인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주저하게 될 것이고, 결국 변호인으로부터 실질적이고도 충분한 조력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대법원 2024모730판결
[불법 촬영은 맞지만 무죄]
변호사법이 개정된 직후 대법원은 개정법의 취지에 따라 ‘피의자·피고인과 변호인 사이에 생성된 형사사건에 관한 법률자문 서류 등에 대한 압수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어서는 아니된다’고 판시하면서(2024모730), 비밀유지권을 침해하여 이루어진 수사기관의 이메일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취소하기에 이르렀다.

(2) 대법원 2025도4422판결
법 개정 직후인 2026년 2월 26일 선고된 디지털 성범죄에 관한 대법원 2025도4422 판결 역시 같은 취지이다.

위 판결은 피고인이 휴대폰 카메라를 이용하여 피해 여성과 성관계하는 장면을 몰래 촬영한 사건에 관한 것이었다. 피고인은 법정에서 기소된 혐의를 모두 인정하였고 원심은 유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수사기관이 의뢰인과 변호인 사이의 비밀유지권을 침해한 압수수색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였다면서 무죄 취지로 파기하였다.

위 사건에서 피고인은 수사단계에서 휴대전화를 초기화하여 성관계 영상을 삭제하였다. 압수된 피고인의 또 다른 휴대폰에서 발견된 피고인과 변호인의 통화녹음 파일에는 피고인이 변호인에게 ‘피해 여성과의 성관계 영상을 몰래 촬영하였다’는 취지로 말하는 내용이 녹음되어 있었다. 변호인은 수사단계에서 ‘피의자가 촬영사실을 전부 인정했고, 어떻게든 증거를 인멸하려고 하였다’는 취지로 검사에게 진술하기도 했다.

통화녹음 파일은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유일한 보강증거였다. 하지만, 대법원은 ‘통화녹음 파일의 압수는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침해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판시하며 그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나아가 피고인의 법정 자백과 변호인이 검사에게 했던 진술도 위법하게 수집된 통화녹음 파일에 기초하여 이루어진 것이므로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결국 통화녹음 파일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는 이상 위 사건은 무죄라고 판단하였다.

이 판결은 종래 디지털 성범죄 사건에서 피고인의 이익보다는 피해자 보호나 실체 진실발견 등 공익을 보다 강조하면서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을 유연하게 적용해 왔던 판례의 추세와는 그 궤를 달리한다. 형사절차에서 변호인 조력권을 충분히 보장하고 피고인의 방어권을 실질적으로 구현하고자 한 개정 변호사법의 취지를 보다 강조한 판례로 해석된다.

성폭력고소

5. 변호인 조력권의 보장과 진실 발견 가치 상충

(1) 변호인 조력권의 보장과 진실 발견의 균형
의뢰인과 변호인 사이의 비밀유지권을 보장하는 것은 형사절차의 공정성을 담보하고 국민의 인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그 당위성을 부정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본 사례처럼 실체 진실의 발견과 피해자 보호라는 공익에 대한 제한사유로 기능한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개정 변호사법은 일정한 경우에 [비밀유지권에 대한 예외]를 두어 방어권 보장과 진실발견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2) 개정 변호사법 비밀유지권에 대한 예외 규정
특히 법 제26조2 제3항 2호에서는
변호사가 의뢰인과 공범 관계에 있거나
변호사가 의뢰인의 증거인멸 등 범죄 기타 위법행위에 관여하거나
의뢰인이 변호사와의 의사 교환 내용을 위법행위에 사용하거나 사용하려고 한 경우 등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자료를 공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성범죄피해자

6. 중대한 공익상 필요 판단 기준과 영미법상 ACP 예외 사유

(1) 중대한 공익상 필요 판단 기준
대법원은 위 불법촬영 사례에서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있는지 여부는 범죄 혐의의 중대성, 압수물의 증거가치 및 중요성, 압수로 인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의 침해 정도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엄격하게 판단하여야 한다’며 그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향후 압수수색이 허용되는 범위와 관련하여 중대한 공익상의 필요에 대한 해석이 주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2) 영미법계 비밀유지권 예외 사유
ACP 법리가 확립되어 온 영미에서도 비밀유지권의 대표적인 예외사유로 ‘의뢰인이 장래에 위법행위를 실행하거나 계획하기 위해 변호사의 조력을 활용한 경우(Crime-Fraud Exception)’를 인정하고 있다.

과거의 위법행위를 숨기기 위한 위증, 증거인멸도 이에 해당한다. 의뢰인이 자기 또는 제3자의 범죄를 진척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있으면 족하고, 변호사가 이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거나 의뢰인의 의도를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3) 구체적 사례
[Regina V. Cox, 14 Q.B.D. 153 (1884)]. 변호사가 의뢰인의 범죄의도를 전혀 모른 채 법적 조언을 제공한 경우라도 예외사유에 해당될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위법을 목적으로 변호인의 조력을 이용하려고 자문을 구하는 것은 비밀유지권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3) ‘중대한 공익상 필요’ 향후 판례 축적 기대
앞서 본 사건에서도 피고인이 문제가 된 영상의 삭제를 의도하며 증거인멸을 시도하기 위해 변호인과 통화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또한, 통화녹음 파일은 중대범죄인 디지털성범죄를 입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증거였다는 점에서 증거능력을 부여할 중대한 공익상의 필요를 인정할 여지도 있었다. 법해석의 관점에서 ‘중대한 공익상의 필요’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는 향후 판례를 통해서 형성될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 실무적으로는 피의자나 변호인이 비밀유지권을 주장하며 수사기관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법률자문 자료의 공개를 거부하는 경우에 수사기관이 의뢰인의 위법행위 등 중대한 공익상의 필요를 판단하기 위한 전제로서 위 자료의 탐색이 가능한지에 대한 문제도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7. 향후 ACP 관련 판례 축적될 것

개정된 변호사법에 따라 향후 ACP에 대한 판례가 축적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예외 사유의 구체적인 기준이 다양하게 정립될 것으로 기대한다.

형사절차에서 국민의 기본적 인권으로서의 변호인 조력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되 중대한 공익을 포기하지 않는 섬세한 균형이 필요하다.

성폭력

-출처-
2026. 7. 11. 법률신문

https://blog.naver.com/duckhee2979/224252784590[변호사법 개정으로 ACP제도 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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