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비리 사실을 아파트 내 현수막 등에 게시해 비방했더라도 그 내용이 ‘진실한 사실’에 해당하고 게시 의도가 공익적 목적이라면 위법성이 조각돼 명예훼손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명예훼손, 모욕 혐의로 기소된 A와 B에 대해 각각 벌금 30만 원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2025. 5. 29. 사건을 부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2024도14555).
2. 사실관계
-A는 부산의 한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감사인 아파트 관리소장, B는 해당 아파트의 ‘관리비 바로잡기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이다. 이들은 아파트 운영비 횡령 의혹이 불거진 입주자 대표회의 회장 C를 비방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설치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현수막에는 ‘진실은 회장님께서 거짓으로 우리 입주민을 속이고 우롱하고 다수의 유흥업소 드나든 사실과 접대부를 부르고 양주를 마시면서 우리의 피 같은 관리비를 법과 규약을 어기면서 물 쓰듯 펑펑 썼다는 것입니다’는 내용이 기재됐다.
-B는 아파트 각 동 로비에 모니터를 설치하고 ‘미쳤구나 입주자대표회장’ ‘당신에겐 회장이란 말 쓰기도 부끄럽습니다’는 내용의 글을 게시해 C를 모욕한 혐의도 받았다.
A는 2020. 3.~4. 입주자대표회의 회계 및 관리 등에 관한 감사를 실시한 후 C가 입주자대표회의 운영비를 불법·부당하게 지출했다는 내용의 감사보고서를 입주민 게시판에 게시하기도 하였다. A는 C의 해임사유가 기재된 해임절차 동의서에 입주자 390여 명의 동의를 받아 C의 해임을 요구했다.
-C는 해임절차 진행 동의서를 받고 있는 입주민으로부터 동의서를 빼앗았고 그 과정에서 입주민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했다.
하급심 판단은 모두 A, B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1심 재판부는 “아파트 관리비 횡령 여부가 쟁점이었다면 아파트 입주자들을 상대로 적절한 수준의 의견 표시를 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①횡령 피해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볼 수 있게 한 점
② 미성년자들도 거주하는 아파트에서 굳이 접대부 관련한 부분을 강조한 점
③기존의 현수막 설치대나 모니터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 대형 현수막을 제작하고 모니터를 일부러 설치한 점
④ 그 과정에서 설치절차를 위반한 점을 고려했을 때,
A 등의 행위를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거나 사회통념상 허용되는 정당행위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의 판단도 같았다.
(2) 3심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현수막과 모니터에 기재된 글의 주요 내용은 ‘C가 법과 관리규약을 어기며 입주자대표회의 관리비를 임의로 사용했다’는 것과 ‘C가 해임절차 진행 동의서에 서명을 받고 있는 입주민으로부터 동의서를 탈취했고 그 과정에서 입주민에게 폭행을 가했다’는 부분으로, 객관적 사실과 일치하므로 글의 중요한 부분이 명예훼손죄의 위법성 조각 요건을 규정한 형법 제310조의 ‘진실한 사실’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형법 제310조는 ‘형법 제307조 제1항의 명예훼손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이어 “A 등은 입주자대표회의 운영비를 임의로 사용한 C가 회장 직책을 수행하는 것이 부당하고, C가 자진 사퇴를 통해 입주자대표회의의 정상화를 도모해 입주민 공동의 이익을 보호함과 동시에 피해회복을 위한 정당한 조치를 취한다는 이유로 현수막 등을 설치한 것으로 보이므로 그 주된 의도와 목적 측면에서 공익성도 충분히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또 “‘유흥업소 드나든 사실과 접대부를 부르고 양주를 마시면서’, ‘우롱하고’ ‘물 쓰듯 펑펑’ ‘파렴치한’ ‘피해자 코스프레’ 등의 표현은 다소 과장된 감정적 표현이나, 의견 표명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며 “따라서 형법 제310조에 따라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볼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B가 아파트 각 동 로비에 설치한 모니터 화면을 통해 C를 모욕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검사가 모욕에 해당한다고 특정한 ‘미쳤구나’와 ‘당신에겐 회장이란 말 쓰기도 부끄럽습니다’라는 표현은 피해자에 대한 부정적·비판적 의견이나 감정이 담긴 경미한 수준의 추상적 표현 또는 무례한 표현에 해당할 뿐이지 피해자의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표현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출처-
2025. 6. 17. 법률신문
아파트운영비
4. ‘비방할 목적‘ 판례 법리
(1) 비방할 목적과 공공의 이익은 상충 개념
사람을 비방할 목적에 대하여 대법원은 “가해의 의사와 목적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서,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는지는 드러난 사실의 내용과 성질, 사실의 공표가 이뤄어진 상대방의 범위, 표현의 방법 등 표현 자체에 관한 여러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으로 훼손되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비교,형량하여 판단하여야 하고, ‘비방할 목적’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과는 행위자의 주관적 의도라는 방향에서 상반되므로, 드러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은 부정된다.
여기에서 ‘드러낸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란 드러낸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자도 주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드러낸 것이어야 한다. 그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는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공무원 등 공인인지 아니면 사인에 불과한지, 그 표현이 객관적으로 공공성,사회성을 갖춘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것으로
사회의 여론형성이나 공개토론에 기여하는 것인지 아니면 순수한 사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 피해자가 명예훼손적 표현의 위험을 자초한 것인지 여부, 그리고 표현으로 훼손되는 명예의 성격과 침해의 정도, 표현의 방법과 동기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행위자의 주요한 동기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부수적으로 다른 사익적 목적이나 동기가 포함되어 있더라도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판단(대법원 2020. 3. 2. 선고 2018도15868 판결 등)한 바 있다.
(2) 위법성조각사유
또한 형법 제310조에 대하여 판례는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라 함은 적시된 사실이 객관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서 행위자도 주관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그 사실을 적시한 것이어야 하는데, 여기의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에는 널리 국가,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되고, 적시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지 여부는 적시 사실의 내용과 성질, 당해 사실의 공표가 이뤄진 상대방의 범위, 그 표현의 방법 등 그 표현 자체에 관한 제반 사정을 감안함과 동시에 그 표현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훼손될 수 있는 명예의 침해 정도 등을 비교,고려하여 결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판시하였다(대법원 1998. 10. 9. 선고 97도158 판결, 대법원 2003. 11. 13. 선고 2003도3606 판결 등).
한편,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가 형법 제310조의 규정에 따라 위법성이 조각되어 처벌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하여는 그것이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 해당된다는 점을 행위자가 증명해야 하는 것이고(대판 95도1473), 법원이 적법하게 증거를 채택하여 조사한 다음, 형법 제310조 소정의 위법성조각사유의 요건이 입증되지 않는다면 그 불이익은 피고인의 부담으로 하여야 한다(대판 2004도14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