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문제소재
최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의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부동산신탁시장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판결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선고되었다(대상판결 : 서울중앙지방법원 2025. 5. 30. 선고 2024가합69485 판결). 이는 책임준공확약형 관리형토지신탁과 관련하여,
신탁회사가 책임준공의무의 이행을 지체하는 경우에도 대주단에게 지연손해금이 아닌 대출원리금 및 연체이자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이다. 이 판결은 신탁회사의 책임 범위를 매우 넓게 인정한 것으로 시장 전반에 상당한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2. 사실관계
시행사는 2022. 5.경 물류센터 신축·분양사업을 추진하면서 대주단으로부터 300억 원을 조달하는 내용의 대출약정을 체결하였다. 차주대주단(이하 원고)·시공사 등, 시행사, 신탁회사(이하 피고)는 이 대출금채무를 담보하기 위하여 해당 사업부지를 신탁재산으로, 원고들을 우선수익자로 하는 관리형토지신탁계약을 체결하였다.
피고는 시공사가 준공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대출금의 최초 인출일로부터 22개월이 되는 날(신탁회사 책임준공기한)까지 책임준공의무를 이행하기로 하였다. 나아가 피고는 자신의 책임준공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그로 인해 원고들에 발생하는 손해를 배상하기로 하였다(책임준공확약).
이 사안의 대출약정서·신탁계약서·책임준공이행확약서에서는 피고의 책임준공의무 미이행으로 인해 원고들에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면서 “손해”라는 단어 뒤에 “(대출원리금 및 연체이자)”라는 문구를 부기하였다. 시공사는 준공기한까지 준공하지 못하였고,
피고도 책임준공기한인 2024. 3. 20.까지 공사 및 사용승인 취득을 완료하지 못하였다. 이후 대출금채권의 만기가 도래하였고, 차주는 원고들에게 대출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하였다. 피고는 2024. 8. 30. 165억 원의 고유자금을 투입하여 물류센터를 준공하고 사용승인을 받았다.
원고들은 피고를 상대로 책임준공의무의 불이행을 원인으로 대출원리금 및 연체이자(이하 대출원리금 등) 전액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다.

3. 법원판단
(1) 손해배상액의 예정 인정 여부
대상사건의 핵심 쟁점은 신탁계약·대출약정·책임준공확약서 등에 명시된 손해배상 문구를 근거로 대출원리금 등 전액에 대한 ‘손해배상액 예정’을 약정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였다. 법원은 위 문서들에 공통적으로 ‘피고가 책임준공을 이행하지 못하면, 대주단에게 발생한 손해(대출원리금 및 연체이자 상당액)를 배상한다’고 규정하였고,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나 ‘위약금’의 표현이 없더라도 분쟁 없이 액수를 확정할 수 있다면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2) 손해배상 예정액의 감액 여부
피고는 공사가 다소 지연되었을 뿐 최종적으로 준공되었고, 물류센터의 감정가액이 대출금채권을 상회하는 점 등을 근거로 손해배상 예정액이 과다하다고도 주장하였다. 법원은 피고가 통상의 신탁계약보다 높은 보수를 수취한 점, 피고의 책임준공의무 불이행으로 인해 선매입계약이 해제됨에 따라,
원고들은 물류센터를 예정된 금액에 매각하여 대출금 전액을 회수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였고, 대출원리금 등의 손해배상 예정액이 원고들에 발생하는 손해액을 과도하게 넘어선 것으로 보기 어려운 점, 피고가 손해배상액 예정에 따라 대출원리금 등 전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것은 책임준공확약의 담보 목적 및 거래 관행에 부합하고, 피고의 책임준공의무 위반에 원고들의 귀책 사유가 없는 점 등에 비추어 손해배상액의 예정이 공정성을 잃지 않았다고 보았다.

4. 평석
(1) 대출원리금 등 전액을 손해배상 예정액으로 보는 것이 자본시장법이 신탁업자에게 금지하는 손실보전행위에 해당하는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04조 제1항은 “신탁업자는 수탁한 재산에 대하여 손실의 보전이나 이익의 보장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입법 취지는 투자자가 자신의 투자 결정에 따른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도록 함으로써,
시장의 공정한 가격 형성을 저해하고 안이한 투자 판단을 유발할 수 있는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는 것이다. 수익자는 신탁에서 생기는 경제적 이익을 누리는 주체이다. 원고들은 신탁계약의 우선수익자로서 “수탁한 재산”으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누리므로, 위 규정에 따라 신탁업자로부터 손실의 보전을 받을 수 없다.
사안에서 피고가 책임준공의무의 이행을 지체하였다는 이유로 실제 손해가 아닌 대출원리금 등 전액을 원고들에게 지급하도록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신탁회사가 우선수익자인 대주단에게 손실보전을 한 것에 해당하여 강행규정인 자본시장법 시행령 제104조 제1항을 위반하여 무효이다.
법원이 책임준공확약상의 손해배상 조항을 근거로 책임준공의무 불이행의 당사자에게 대출원리금 등 전액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은, 위와 같은 강행규정의 적용을 배제하거나 잠탈하는 불힙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대법원 2019. 6. 13 선고 2016다203551 판결의 취지 참조).
대상판결은 “책임준공확약에 따른 피고의 손해배상의무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의 성격을 가지고, 이 사건 각 조항이 대주단에게 발생한 손해를 대출원리금 등 로 정한 것은 피고가 책임준공의무를 불이행하는 경우에 지급하여야 할 손해배상액을 미리 정해 둔 것으로서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다.”라고 판시하였다.
피고의 본 건 책임준공확약은 신탁계약 및 이에 따른 신탁사업에 필요한 자금조달 및 신탁사업의 수행과 필수불가결하게 연결되어있다. 그런데도 대상판결은 책임준공확약과 신탁계약과의 목적 및 관계는 간과한 채, 책임준공확약의무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책임과 손실보전의 문제를 완전히 무관한 법률관계로 보는 형식적인 판단을 하였다는 점에서 수긍하기 어렵다.
대상판결의 논리대로라면, 자본시장법이 신탁회사의 손실보전행위를 금지하고 있음에도, 신탁회사가 수익자와 신탁계약과 별도로 다른 형식의 계약을 체결하고, 그 의무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명목으로 손실을 보전해주더라도 적법·유효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2) 대출원리금 등 전액에 대한 손해배상 예정액으로 보는 것이 정당한지
대상판결이 대출원리금 등 전액을 배상액으로 인정한 점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시공사의 준공 지연으로 대주단이 입는 실제 손해는 이행지체로 인한 손해, 즉 대출원리금에 대한 연체이자 상당액이다. 그럼에도 대상판결처럼 단순한 준공 지연에도 신탁회사로 하여금 대출원리금 등 전액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은 과도한 책임의 확장으로 사실상 위약벌에 가까운 성격을 가질 수 있다.
신탁회사가 책임준공기한을 도과하였더라도 종국적으로는 건축물의 준공 및 사용승인을 완료하여 대주단이 우선수익권의 행사를 통해 해당 신탁재산으로부터 대출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게 되었다면, 신탁회사는 책임준공의무를 이행한 것이고, 기존의 채무불이행은 단순한 이행지체로 평가하여야 한다.
이 경우 대주단은 신탁회사를 상대로 전보배상(채무이행에 갈음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고, 다만 책임준공의무 이행의 지체로 인하여 입게 된 손해를 청구할 수 있을 뿐이다. 민법상 과도한 손해배상 예정액은 감액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대상판결이 인정한 손해배상의 범위에 관해서도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3) 준공이 늦어진 경우에도 대출원리금 등 전액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고 볼 수 있는지
일반적으로 계약을 해석할 때에는 형식적인 문구에만 얽매여서는 안 되고 쌍방당사자의 진정한 의사가 무엇인가를 탐구하여야 한다. 계약 내용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 계약서의 문언이 계약 해석의 출발점이지만, 당사자들 사이에 계약서의 문언과 다른 내용으로 의사가 합치된 경우 그 의사에 따라 계약이 성립한 것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18. 7. 26. 선고 2016다242334 판결).
당사자 사이에 계약의 해석을 둘러싸고 이견이 있어 당사자의 의사 해석이 문제되는 경우에는 계약의 형식과 내용, 계약이 체결된 동기와 경위, 계약으로 달성하려는 목적,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 거래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 그리고 사회일반의 상식과 거래의 통념에 따라 합리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대법원 2017. 9. 26. 선고 2015다245145 판결).
대상판결과 관련하여, 법원이 인정한 신탁회사의 책임 범위가 당초 계약당사자들이 기대했던 위험분담의사와 일치하는지에 관하여 의문이 있다. 신탁회사는 토지를 관리하고 자금을 집행하는 수탁자의 역할을 하고, 건설회사는 목적물의 시공을 맡는다. 신탁회사가 건설 현장의 모든 변수를 직접 통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신탁회사가 다른 신탁상품보다 높은 수수료 수익을 얻고자 하는 일념만으로 공사 지연 자체를 사업 실패로 간주하고 지연손해금이 아닌 대출원리금 등 전액에 대한 지급책임을 인수하였을 가능성은 매우 적다. 그럼에도 시공사의 귀책사유로 인한 공사 지연에 대해서까지 신탁회사에 대출원리금 등 전액 지급 이라는 포괄적인 책임을 지우는 것은,
신탁계약의 목적과 당사자들이 계약체결 당시에 가졌던 합리적인 의사와 일치하지 아니한다고 봄이 합리적이다. 나아가 대상판결처럼 책임준공확약의무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의 내용을 전보배상 명목의 손해배상액 예정으로 인정하는 것은 강행규정인 자본시장법령에 반한다는 점에서 신탁회사를 포함한 책임준공확약의 당사자들이 그와 같은 합의를 하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4) 결론
결론적으로 대상판결은 책임준공확약형 관리형토지신탁 사업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의 합의된 의사를 합리적으로 해석하였다고 볼 수 없다.

-출처-
2025. 8. 6. 법률신문, 남궁주현 교수(성균관대 로스쿨)
https://blog.naver.com/duckhee2979/223971405430[동일사건 개요]
https://blog.naver.com/duckhee2979/221086233545[건설소송 유의점]
https://blog.naver.com/duckhee2979/220662770818[건설소송과 지체상금]